원주 비두리귀부에서 만난 들판 위 돌의 묵직한 세월
맑은 하늘 아래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던 오후, 원주 문막읍의 비두리귀부 및 이수를 찾아갔습니다.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거북 모양의 석조물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돌의 표면에는 세월이 남긴 미세한 균열과 이끼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몸체는 낮지만 묵직했고, 머리는 부드럽게 들려 있었으며, 그 위로 올려진 비신과 이수의 흔적이 과거의 위용을 전하는 듯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주변의 억새가 흔들리고, 그 사이로 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습니다. 조용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오랜 시간의 기억이 새겨진 장소였습니다.
1. 문막읍 들판 속으로 이어지는 길
비두리귀부 및 이수는 문막읍 중심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 비두리 마을 외곽의 완만한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비두리 귀부’ 표지판이 도로 옆에 세워져 있고, 마을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공터 형태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 돌계단을 따라 2분 정도 오르면, 들판 끝에서 귀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변은 논과 밭이 어우러져 있고, 멀리 문막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길은 평탄했지만 흙길이라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가을 들판의 바람이 귀부의 표면을 스치며 작은 먼지를 흩날릴 때, 오래된 돌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 귀부와 이수의 형태적 특징
귀부는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를 다듬어 만든 것으로, 길이 약 2.4미터, 폭 1.8미터 정도의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거북의 머리는 앞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입을 살짝 다문 형태입니다. 등 부분에는 비신을 끼워 넣었던 사각 홈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구름무늬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꼬리 부분은 짧고 단단하며, 네 발은 넓게 퍼져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이수는 비신 위에 얹는 장식부로, 귀부 옆에 놓여 있습니다. 구름과 용의 형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그 조각의 선이 섬세하고 유려했습니다. 전체적으로 균형감이 뛰어나고, 조각의 솜씨가 정제되어 있어 조선 후기 석비 제작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3. 비석의 유래와 역사적 배경
비두리귀부 및 이수는 조선 후기 문막 지역의 고위 관리나 유학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비석의 일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는 비신이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지만, 그 규모와 조각의 정교함으로 보아 지역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을 위한 비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원주 일대 조선시대 비석 조각의 대표작으로, 귀부의 사실적 형태와 이수의 장식미가 뛰어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용의 머리와 구름의 흐름이 정교하게 새겨진 이수는 당시 장인의 수준 높은 조각 기술을 보여줍니다. 사라진 비신 위에는 어떤 글귀가 새겨져 있었을까, 상상만으로도 과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4. 정갈하게 보존된 주변 환경
귀부 주변은 낮은 돌담으로 둘러져 있으며, 바닥에는 자갈이 고르게 깔려 있었습니다. 안내문과 함께 작은 나무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앉아 바라보기 좋았습니다. 귀부 위로는 이끼가 얇게 피어 있었고, 돌의 색감은 햇빛에 따라 회색과 연한 청색을 오갔습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쓰레기나 훼손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돌 주변의 잡초를 손수 제거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불면 돌 표면의 홈마다 작은 그림자가 생기며, 돌이 스스로 호흡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손길이 멈춘 자리에 자연의 시간이 천천히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5. 인근 유적과 함께 둘러보기
비두리귀부를 감상한 뒤에는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황무진충효사’를 방문했습니다. 두 곳 모두 조선 후기 원주 지역의 인물과 역사를 기리는 유적으로, 함께 보면 시대의 정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문막천 둔치길’을 따라 산책하며 들판의 풍경을 즐겼습니다. 가을철에는 억새가 피어나 풍경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문막읍내 ‘한우불고기정식집’에서 따뜻한 식사로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귀부에서 사당, 그리고 들길로 이어지는 하루 일정은 역사와 자연이 조화된 평화로운 코스였습니다.
6. 방문 시 참고할 점
비두리귀부 및 이수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귀부가 야외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에는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발밑이 흙길이기 때문에 운동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고, 겨울에는 돌이 차가워 손을 대면 냉기가 전해집니다. 비석의 일부이므로 사진 촬영 시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권장됩니다. 오전 시간대에는 햇빛이 비두리 들판을 비추며 귀부의 형태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방문 시 조용히 머물며, 돌의 질감과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느껴보면 좋습니다.
마무리
비두리귀부 및 이수는 화려한 장식 대신 단단한 세월의 무게를 품은 유적이었습니다. 비신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받치던 귀부와 이수만으로도 조선의 미감과 장인의 손길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바람과 빛이 묘하게 어우러져, 한때 그 위에 새겨졌을 글귀의 의미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마루 대신 들판 위에, 비석 대신 기억으로 남은 공간. 다음에는 이른 봄 새순이 돋는 시기에 다시 찾아, 돌 위에 내려앉는 부드러운 햇살과 함께 그 고요한 품을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비두리귀부 및 이수는 세월을 초월한 조각의 미학이 담긴, 원주의 깊은 역사 한 조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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